우리는 흔히 말한다.
“사랑이 전부야.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도덕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의 명령이다.”
그 유명한 의무론적 윤리학의 출발이다.
사랑은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감정보다 도덕 법칙에 따르는 행위, 즉 ‘의무’였다.
그렇다면 왜 칸트는 따뜻한 사랑보다 차가운 이성을, 자발적 선의보다 엄격한 도덕 의무를 앞세웠을까?
감정은 신뢰할 수 없다
칸트 철학의 핵심은 자율성과 이성이다.
그는 인간이 도덕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정이나 결과가 아니라 오직 도덕적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동기가 ‘좋은 결과’ 때문이거나, ‘상대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행동 자체가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도와주는 상황을 보자.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 도와준다면, 그것은 ‘호감’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싫든 좋든, 단지 그것이 옳은 행동이기 때문에 도왔다면,
그때야말로 진정한 도덕 행위가 된다.
칸트는 감정은 변덕스럽고 불확실하다고 보았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이 내일은 미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의무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이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정언명령,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
칸트의 도덕 철학은 정언명령이라는 개념 위에 서 있다.
“네가 하려는 행위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어도 괜찮은가?”
이 질문이 칸트 윤리의 핵심이다.
가령, 내가 약속을 어겨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세계 모든 사람도 약속을 어길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신뢰가 무너진 세계다.
따라서, 나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처럼 칸트에게 도덕은 보편적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도덕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떤 사람에게는 강하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작용하지 않을 수 있는 비보편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도덕은 고귀하다
칸트는 사랑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간의 정서와 감정이 삶에 있어 중요한 가치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사랑에 의한 선행’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행위가 아니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 동기가 감정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본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도덕 행위다.”
이것은 따뜻한 위로라기보다, 차가운 헌신에 가깝다.
하지만 칸트에게 진정한 도덕성은 그런 이성적 엄격함 속에 담겨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칸트의 윤리는 다소 딱딱하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감정이 지배하는 시대에, 감정보다 의무를 우선시하는 윤리는 왠지 냉정하고 거리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기분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과 책임의 문제일 것이다.
칸트는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덕이 감정에 종속되어선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소중하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옳은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의가 정당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묻는다.
“네가 하는 사랑은 도덕적 원칙과 함께 가고 있는가?”
그렇기에 칸트는 의무를 사랑보다 먼저 세운다.
그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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