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만의 독점 영역, 그 경계가 흐려진다
'창의성(Creativity)'은 오랫동안 인간 지성의 최종 보루처럼 여겨져 왔다. 기계는 계산하고 분석하고 예측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상상하거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창의성이란, 우리가 가진 가장 인간적인 재능. 문학과 예술, 디자인과 건축, 과학적 혁신까지 이르는 모든 창조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부상은 이 전통적인 믿음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AI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 실제로 AI가 작곡한 음악이 상업 음원으로 출시되고, AI가 그린 그림이 뉴욕 경매에서 억대에 낙찰되기도 했다. 또, 복잡한 수학 공식을 활용해 건축 디자인의 초기 도안을 제시하고, 브랜드 광고의 문구를 구성하며, 장편 소설의 초안까지 만들어내기도 한다.
- 그렇다면 AI가 이룬 이 모든 작업, 우리는 그것을 ‘창작’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AI가 창작하는 방식은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경험과 감정, 맥락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확장한다. 반면, AI는 데이터에 기반한 확률적 예측과 패턴 인식으로 결과를 도출한다. 방대한 학습 자료에서 ‘이런 스타일에는 이런 어휘가 쓰인다’, ‘이런 구성에는 이런 전개가 많다’를 통계적으로 추출해내는 것. 겉보기에 창의적이어도, 그 바탕은 철저하게 과거 데이터의 반복이다.
하지만 인간의 창의성도 ‘완전한 무(無)에서의 창조’는 아니다. 익숙한 구조를 비틀고, 기존의 규칙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은 탄생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AI 역시 일정 수준의 ‘창의적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특히, 인간이 가진 편향이나 관습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때때로 예상치 못한 기발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질문은 이거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감정을 기반으로 해야만 창의성인가, 아니면 단지 ‘새로움’ 자체가 창의성의 기준인가?
현재 학계와 철학계에서도 이 논의는 활발하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창의성을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으로 설명했다. MIT의 AI 연구자 데보라 존슨은 '감정 없는 창작도 창의성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AI의 역할을 단순 보조를 넘어선 '창의적 파트너'로 본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증폭시키는 ‘촉진자’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은 이미 AI를 새로운 ‘뮤즈’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는 AI를 통해 수천 개의 패턴 조합을 실험할 수 있고, 작가는 창작의 영감을 주는 키워드를 AI로부터 얻는다. 인간의 직관과 AI의 계산이 결합하는 창의성은, 이전보다 더 넓고 깊은 스펙트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I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의도와 맥락, 그리고 정서적 진정성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끼는 울림, 톨스토이의 문장을 따라가며 체험하는 내면의 갈등은, 단순히 ‘기술적으로 우수한 작품’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감정의 뉘앙스, 시대적 맥락, 존재에 대한 물음들. 이런 것들은 아직 AI가 다가가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나 창의성의 영역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확장되어 왔다. 산업혁명 시대 이후 예술은 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됐고,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예술의 지형을 바꿨다. 그런 흐름에서 보면, 지금 우리는 ‘AI와 함께 만드는 창의성’이라는 새로운 챕터를 쓰고 있는 셈이다.
- 결론적으로,
AI는 감정이나 자아를 갖지 않기에 인간과 동일한 의미의 ‘창의성’을 지니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창의성을 자극하고, 새로운 창작 방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창의성의 경계는 더 이상 인간만의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 대 AI’가 아니라, ‘인간과 AI’가 함께 만드는 새로운 창조 시대. 어쩌면 지금 가장 창의적인 질문은 “AI도 창의성을 가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우리는 AI와 어떤 창의성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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