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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 역사 이야기

고종의 커피 – 서양 문화가 조선에 들어온 순간들

by Macan 2025. 4. 22.

문을 두드리던 서양

19세기 말, 조선의 시간은 거대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었다. 외세의 압박, 내부의 개혁 논쟁,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명의 충격’이라 할 만한 서구 문화와의 접촉.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고종이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제였던 그는, 조선이라는 유교적 틀 안에서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복잡한 숙제를 안고 있었다.

그가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는 단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것은 조선이 '서양 문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익숙한 다도의 나라에서, 이제는 향기로운 검은 액체를 찻잔이 아닌 도자기 커피잔에 담아 마시는 순간이 온 것이다.

정관헌의 커피 한 잔

정관헌은 1900년 고종이 직접 건축을 지시한 서양식 정자였다. 벽난로가 있고, 아치형 창문과 테라스가 있는 이 건물은 전통 궁궐의 곁에서 기묘하게도 유럽풍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곳에서 고종은 외교 사절과 만나 서양식 다과를 나누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단순히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의례의 언어였고, 동맹의 코드였으며, 시대의 취향이었다. 당시 커피는 서구 고위층의 상징이자 근대 문명의 일부였기 때문에, 고종이 그것을 택했다는 건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나는 조선의 왕이지만, 시대를 알고 있다’는 상징적 행위 말이다.

정관헌

 들어온 서양의 얼굴들

고종의 커피뿐만이 아니었다. 근대 문물은 전기, 전화, 철도, 인쇄기와 함께 조선의 풍경을 빠르게 바꾸기 시작했다. 최초의 전등은 궁궐 안에 켜졌고, 서울 시내에는 경인선이 달리며 공간 감각을 바꾸어놓았다. 그 모든 기술과 도구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방식’이었다.

의복도 바뀌고 있었다. 흰 두루마기 대신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 거리를 걷기 시작했고, 신문과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활자 문화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조선은 점점 더 ‘읽고, 보고, 마시는’ 사회로 옮겨가고 있었다.

고종황제의 커피잔

커피 향 너머의 긴장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환영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서양 문물에 대한 거부감, 특히 종교와 정치적 외압에 대한 반발은 크고도 깊었다. 고종의 커피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문명의 상징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의 징후이기도 했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은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충돌이었다.

고종의 커피는 그 복잡한 경계 위에서 탄생한 것이다. 전통을 버리지는 않되, 미래를 부정하지도 않는. ‘둘 다 품어야 하는’ 시대정신의 결정체.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정관헌의 커피 한 잔은 오늘날에도 많은 생각을 남긴다. 그것은 단지 고종의 입맛이 서양적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한 감각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그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 전통과 미래 사이,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