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비엔나 1900’ 전시가 열리는 기획전시실엔 하루 종일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콜로만 모저 등 ‘빈 분리파’ 예술가들의 걸작이 대거 소개되는 이 전시엔 최근 각계 명사들도 모습을 드러냈죠.
배우 윤여정,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영화감독 김초희, 뇌과학자 정재승…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조용히 작품에 몰입하던 이들이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고 합니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들 앞에서 말이죠.
황금빛을 그린 남자, 구스타프 클림트란 누구인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오스트리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입니다.
‘황금의 화가’, ‘관능의 화가’, ‘비엔나 세기말을 대표하는 천재’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그 모든 표현은 한 가지로 수렴됩니다.
그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아름다움을 그린 화가였습니다.
빈 분리파, 금빛 혁명 속의 클림트
1897년, 클림트는 당시 오스트리아 미술계의 보수성과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빈 분리파(Sezession)’를 창설하죠. 이들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선언했습니다.
“예술은 자유로워야 한다. 예술가는 자기 시대의 정신을 표현해야 한다.”
이 새로운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클림트는 장식성과 상징주의, 아르누보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예술의 문법을 바꾸어놓습니다.
그의 그림엔 이야기가 있고, 철학이 있고, 무엇보다 심리적 깊이가 있습니다.
클림트의 ‘황금시대’가 시작되다
클림트는 1900년대 초반, 비잔틴 미술과 일본 목판화에서 영향을 받아 특유의 금박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 시기 대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유디트 I》 (1901): 고대 영웅 유디트를 강렬한 여성으로 재해석한 작품. 관능과 권력이 절묘하게 뒤섞인 초상입니다.
-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1907):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이 초상화는 금속의 차가움과 인간의 따스함이 동시에 담긴 명작입니다.
- 《키스》 (1908): 클림트 최고의 걸작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죠.
금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상징이었습니다.
클림트에게 금은 절대성과 불멸, 신성과 욕망이 한데 섞인 인간 존재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도구였죠.
왜 클림트는 그렇게 여성을 많이 그렸을까?
클림트의 그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누워 있는 나부, 잠들어 있는 연인, 치렁치렁한 옷을 입은 부인들까지… 그는 여성의 몸을 수백 번, 수천 번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단순한 성적 대상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는 여성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그렸습니다.
부드러움과 강함, 유혹과 순수, 삶과 죽음이 함께 존재하는 ‘여성’이라는 세계를, 하나의 우주처럼 다루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나는 절대 누군가를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보여줄 뿐이다.”
죽음, 삶, 그리고 시간의 흐름
클림트는 1910년대에 들어서며 보다 내면적이고 철학적인 세계로 들어갑니다.
《생명과 죽음》, 《처녀》 등의 작품에선 인간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서사가 밀도 있게 그려집니다. 이 시기의 그림은 보다 차분하고 어둡지만, 오히려 클림트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시기로 평가받죠.
그는 죽음마저도 금빛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죽음을 혐오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이 시선이 클림트를 단지 ‘황금의 화가’로 머물게 두지 않습니다.
클림트를 사랑하는 이유: 시대를 초월한 감각
그의 그림이 10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지금 보아도 전혀 낡지 않은 미감
기하학 패턴, 금박, 유려한 곡선은 오늘날 패션·인테리어·그래픽 디자인에서도 널리 응용되고 있습니다. - 보는 이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닙니다. 보고 있으면 감정이 올라옵니다. 슬픔, 설렘, 쓸쓸함… 각자의 삶이 투영됩니다. - 철학과 심리를 아우르는 예술성
그는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살았고, 예술로 무의식을 탐구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마무리하며: 당신의 감각은 무엇에 반응하나요?
클림트는 묻지 않습니다.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지 우리 앞에 ‘장면’을 펼쳐 놓습니다.
그 앞에서 감정을 느끼는 건 각자의 몫이죠.
그의 그림 앞에 멈춰 서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삶의 아름다움과 복잡함을 함께 응시하게 됩니다.
윤여정 배우와 이부진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황금빛 유혹 앞에, 조용히 멈춰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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