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달항아리, 이름부터 시(詩)다
처음 그 이름을 들으면 잠시 멈춰 서게 됩니다.
‘달항아리’.
정식 명칭은 백자대호(白磁大壺)지만, 사람들은 이 항아리를 보고 “달 같다”고 느꼈고, 결국 그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달처럼 둥글고 부드럽고, 흠 없는 완벽보다 결점이 빚어낸 여백의 미를 담은 이 항아리는 조선 도자의 미학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왜 '달항아리'인가?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18세기 전후) 궁중에서 주로 사용된 커다란 백자 항아리입니다.
지름은 40cm 안팎, 높이도 40~45cm 이상으로, 두 개의 반구형 몸체를 연결해 만든 게 특징이에요.
- 완전한 구형이 아닌, 미묘하게 찌그러진 비대칭
- 순백의 유약 속에 흐르는 미세한 철분 기운
- 입구와 바닥이 좁고, 중간이 풍성한 곡선
이 모든 불완전함이 '달'의 자연스러운 존재감과 닮았고, 그래서 ‘달항아리’라 불리게 된 것이죠.
달항아리는 왜 특별할까?
- 기술적 제약이 만들어낸 미학
당시의 가마 크기로는 한 번에 이 정도 크기의 항아리를 만들 수 없었기에, 도공들은 반구형을 따로 만들어 붙였습니다.
이때 생기는 미세한 뒤틀림과 유약의 흐름은 완벽한 기계미보다 인간적인 유연함을 만들어냅니다. - 조선의 철학, 비움과 절제
조선 백자의 정신은 군더더기 없는 순백의 미.
장식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 도자기는, 마치 조선 사대부의 심성을 닮았습니다.
이 또한 *“있는 그대로가 가장 자연스럽다”*는 동양 철학의 미감이죠. - 현대 예술가들도 사랑한 항아리
백남준, 이우환, 고은 시인 등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이 달항아리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안에 우주가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실제로 백남준은 달항아리를 '완전한 비움의 예술'이라 표현했고, 고은은 “달 속엔 조선의 눈물이 고여 있다”고 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는 달항아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몇 점의 대표 달항아리가 상설 전시 중입니다.
전시 위치는 3층 조선실, 백자 전시 공간 안쪽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 전시 조명은 일부러 낮고 은은하게 설정되어 있어, 실제로 달빛을 비추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측면 30도 각도에서 볼 때, 입체감과 유약의 농담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 유리관 안에 있지만, 실제로 달과 마주 보는 것 같은 정적이 흐릅니다.
달항아리와 한국인의 정서
달항아리를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그 안엔 다 담기지 않은 ‘무언가’가 있고, 그 여백이 우리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 불완전함이 주는 위로
우리 모두 흠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달항아리는 말합니다.
"흠이 있어야 빛이 들어오는 법"이라고. - 절제된 감정의 미학
장식이나 색을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깊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달항아리는 조선판 ‘미니멀리즘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관람 팁 & 체류시간 늘리기
- 조선실에서 달항아리 먼저 본 후, 분청사기와 청자 항아리와 비교해보세요
시대별 도자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해설 앱 혹은 QR 오디오 설명을 꼭 듣는 것을 추천합니다.
단순한 도자기 그 이상을 느끼게 해줍니다. - 기념품점에서 ‘달항아리 엽서’, 머그컵, 포스터 구입도 가능합니다.
오랜 기억으로 남는 작은 소장품이 되어 줄 거예요.
마무리하며
달항아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너의 찌그러짐도, 그 자체로 달빛처럼 아름답다."
예술은 보는 사람이 완성한다고 합니다.
달항아리 앞에서, 당신만의 이야기를 하나 더 얹어보세요.
반응형
'토요 예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쇼팽에 취한 조성진, 라흐마니노프에 미친 임윤찬 (0) | 2025.06.21 |
---|---|
이부진, 윤여정도 반한 화가… 황금빛 유혹, 구스타프 클림트를 말하다 (2) | 2025.06.21 |
절대색감: 인간의 뇌가 고정된 색을 느끼는 순간, 과학일까 착각일까 (2) | 2025.06.14 |
BTS RM: 음악을 넘어 한국 예술계를 빛내는 진정한 문화 리더 (0) | 2025.05.24 |
르네상스 미술, 알고 보면 엄청난 ‘스폰서십’의 결과물? (0) | 2025.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