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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 역사 이야기

역사는 돌고 돈다? – 조선과 현대의 정치 풍자 비교

by Macan 2025.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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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과 현대의 정치 풍자 비교

"요즘 밈, 진짜 촌철살인이야."
그런데, 그런 풍자… 조선에도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SNS도, 댓글창도 없던 시절. 조선의 백성들은 놀라울 정도로 재치 있고 은근한 방식으로 권력을 비꼬았다. 오늘은 조선 시대의 ‘정치 밈’과 현대의 풍자를 비교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유머와 저항의 코드를 살펴본다.

조선에도 밈이 있었다고?

지금의 밈은 이미지와 문구, 영상 등을 이용해 사회나 인물을 풍자한다. 조선 시대엔 이 역할을 벽서, 풍자시, 그림, 야사, 설화가 맡았다. 특히 정치에 대한 풍자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감히 직접 말할 수 없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방식이었다.


조선의 정치 밈 사례

1. 정조 = 수제비왕?!  검소의 미덕인가, 풍자의 대상인가

정조는 소탈한 식사를 즐겼다는 일화가 많다. 특히 수제비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유명하다. 백성들 사이에선 "수라상도 수제비라니, 검소한 건 알겠는데 너무 티나는 거 아냐?" 같은 말이 돌았다. 검소한 왕의 모습이 자칫 인위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소탈한 척’에 대한 풍자다.

2. 영조는 ‘댓글 조작’의 달인?! 왕의 편집권

영조는 사관의 기록까지 유심히 살펴보았고, 사초 수정에 개입한 정황도 있다. 이를 두고 당시에도 "왕이 기록까지 손본다면, 그건 진짜 기록이냐"는 식의 반응이 퍼졌다. 여론 조작이나 언론 통제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백성들은 이 상황을 풍자하며 ‘왕이 편집장’이라는 말까지 돌렸다.

3. 정약용에게 날아든 ‘대나무 드립’ 곧은 자의 은유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부러져도 휘지 않는다. 휘는 자는 결국 부러진다."
이 시는 겉으로는 자연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당시 정치 현실에 대한 통찰이 담긴 풍자다. 백성들은 이 시를 인용하며, 조정의 유연한(?) 관료들을 비꼬았다. 휘는 자들이 잘만 살아남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밈은 단순한 웃음이 아니다

조선 시대의 풍자는 생존을 위한 은밀한 저항이었다. 직접적인 비판은 곧바로 목숨과 연결되던 시대에, 풍자와 해학은 권력 감시의 유일한 통로였다. 왕조 시대라고 해서 비판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 방식이 지금과 달랐을 뿐이었다.


<열하일기> 속 박지원의 유머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를 다녀오며 쓴 <열하일기>에서, 중국 사회와 자국 조선을 동시에 비판하는 수많은 풍자를 남겼다.
"어찌 백성 위에 앉은 자가 백성 아래처럼 못하단 말인가."
이런 문장은 당시로선 대단히 도발적이다. 하지만 우회적이기에 처벌받지 않았고, 오히려 더 널리 읽히며 풍자의 기능을 했다. 지금이라면 짧은 짤 하나로 회자될 만한 문장이다.


조선 밈과 현대 밈의 닮은꼴

구분 조선 시대 현대 사회
전달 매체 시, 야사, 벽서, 그림 SNS, 이미지, 영상
검열 수준 매우 높음 (언급만으로 처벌 가능) 검열은 낮지만 여론의 압력 존재
주요 대상 왕, 대신, 관료, 유학자 집단 정치인, 정부, 언론, 대기업
핵심 기능 간접 비판, 공동체적 해학 즉각적 풍자, 바이럴 효과

밈은 시대를 꿰뚫는 렌즈다

정치 풍자는 늘 존재해왔다. 다만 그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조선의 백성이 벽서와 시로 말했듯, 오늘날 우리는 댓글과 밈으로 말한다.
풍자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시대를 읽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돌고 도는 역사 속에서, 유머는 언제나 가장 용감한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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