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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 역사 이야기

조선시대에도 파업이 있었다고요

by Macan 2025. 4. 29.

역사 속 노동의 저항과 집단의 목소리

파업이라 하면 산업화 이후의 일로 생각하기 쉽다.
공장, 기계, 노동조합, 시위 현장의 플래카드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집단적 저항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집단 행동을 벌인 사례가 존재한다.
사회적 계약이란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대,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을까.


1. 궁궐의 파업, 궁중 나인들의 집단 거부

조선 후기에 일어난 가장 대표적인 '파업' 사례는
궁중에서 일하던 여성 시종들, 즉 나인들의 집단 퇴거 사건이다.
이들은 궁중의 각종 잡무는 물론
왕과 왕비의 옷, 음식, 약 등을 관리하던 실질적인 실무 인력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순조 10년경,
나인들이 무리 지어 궁을 나가 일을 거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는 장기간의 과중한 업무와 상사로부터의 부당한 대우,
그리고 보상 체계의 불합리성 때문이었다.
이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상소문을 작성해
관리층을 압박하기까지 했다.
이는 오늘날의 인권 개념으로도 꽤 진보적인 집단 행동이었다.

2. 한양 수공업자들의 노역 거부

서울 도성의 각종 공사에 동원되던 장인들과 수공업자들 역시
종종 집단적으로 노역을 거부하는 행동을 보였다.
특히 도성을 수리하거나 궁궐을 보수하는 일에 있어서
관청이 일방적으로 인력을 징발하고
보상은 미미하거나 전혀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이를 참다못한 장인들이 일정 지역 단위로 연대해
출근하지 않거나 관청에 직접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록에는 "장인들이 모의하여 사역을 거부하였다"는 식의 문구가 등장하며
일시적인 작업 중단 사태가 종종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파업과는 다르지만,
집단적 노동 거부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유사한 구조다.

3. 상궁, 의녀, 서리… 관리직 내 하위층의 저항

조선은 관료제 사회였지만
그 속에서도 하위직 종사자들은 부당한 처우에 맞서 여러 방식으로 저항했다.
상궁들은 업무 범위 외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거부 의사를 표시하거나
단체로 휴무를 감행하기도 했고,
의녀들도 지방 파견 근무 중 제대로 된 숙소나 식사를 받지 못하면
의료 활동을 중단하고 상소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또한 서리(행정 실무자) 계층은
문서량 과다와 불합리한 승진 구조,
각종 잦은 부역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자
종종 ‘문서 보이콧’이라는 형태로 업무 거부를 시도했다.
이들은 필사와 보고를 중단함으로써 상층부에 강하게 신호를 보내려 했다.
오늘날의 업무 태업과 유사한 전략이다.

4. 파업의 전통은 저항의 전통이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집단 저항은
근대적 의미의 노동운동과는 분명 구별되지만
그 근저에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
그리고 ‘정당한 대우를 원한다’는 절실함이다.
이는 산업화 이전에도, 농경사회에서도, 심지어 유교적 질서가 지배하던 왕조 시대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인간 본연의 권리 의식이다.

조선의 파업은 정식 노동조합도 없고,
법적 보호 장치도 없던 시대의
무언의 저항이자 조용한 혁명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권리의 뿌리엔
이처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사람들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다.